프라나콘시아유타야 (Phra Nakhon Si Ayutthaya)
1350년에 시암 왕국의 시조인 우통 왕이 라마야나에 나오는 코살라 왕국의 수도인 아요디아에서 이름을 따와 아유타야라는 도시를 건설한 것이 아유타야의 시작으로, 아유타야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시암 왕국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아유타야의 인구는 1600년까지 약 30만 명, 1700년 무렵에는 약 100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의 하나였다.
1767년에 도시는 버마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그 결과 왕국은 붕괴되었다. 옛 도시의 유적은 현재 아유타야 역사공원이 되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도시는 동쪽으로 몇 km 떨어진 곳에 재건되었다. 도시는 한 때 '동양의 베니스'로 불렸다.
지도 - 프라나콘시아유타야 (Phra Nakhon Si Ayutthaya)
지도
나라 - 태국
태국의 국기 |
타이족은 약 11세기 즈음에 중국 남서부에서 동남아 반도로 이주해왔다. 이후 인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몬 왕국, 크메르 제국, 말레이 군주국들이 등장하여 현재 태국계 왕조인 수코타이 왕국, 란나 왕국, 아유타야 왕국과 경쟁을 별였다. 명사에 따르면 14세기말 원나라에 이어 명 태조가 섬라곡국(暹羅斛國)을 섬라국(暹羅國)으로 인정하여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유타야 왕국의 시기인 1511년부터는 포르투갈인들과 만나며 유럽과의 교역을 시작하였고, 아유타야 왕국은 15세기 즈음에 전성기를 맞아 지역 강국으로 번성하였다. 허나 왕국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1767년에 버마-태국 전쟁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탁신 장군이 왕국을 재통합하는 데에 성공했고, 단명한 톤부리 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탁신 장군은 폭정으로 신망을 잃었고, 현재 짜끄리 왕조의 시조인 풋타엿파쭐라룩이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였다. 이 왕조는 현 국왕인 라마 10세까지 왕조를 이어오고 있다.
통화 / 언어
ISO | 통화 | 상징 | 유효숫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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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B | 태국 밧 (Thai baht) | ฿ | 2 |